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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간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산다. 마치 물고기가 물 속을 당연시 여기는 것처럼 시간은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이고,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우리 모두에게 시간은 공평하게 흘러가고,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 부대끼며 시간을 보낸다. 인류의 역사 이래 시간에 대한 우리의 직관은 일관되어왔고 그 자체로 하나의 정의로서 굳혀졌다.
하지만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태어날 때부터 겪어왔던 시간에 대한 직관을 넘어 객관적인 물리학의 눈으로 시간을 바라본다. 그리고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우리가 시간 속에 있는 걸까, 시간이 우리 속에 있는 걸까? 우리는 왜 과거는 떠올리면서 미래는 떠올리지 못할까? 시간은 정말 공평하게 흘러갈까? 아니, 시간이 뭘까?
시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한 이가 있다. 우리 모두가 아는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이다. 어디에서나 시간이 동일하게 흐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인슈타인에 의해 파헤쳐진 시간은 어떤 사람은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어떤 사람은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렇게 시간의 유일성은 깨지고 우리 모두는, 모든 세포는, 모든 분자, 원자들은 서로 상대적인 시간을 가지고 변화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시간이 모두에게 일정하게 흘러간다는 관념을 가지게 되었을까? 분명 시계를 만들기 전, 그러니까 아주 먼 옛날에는 각 사람마다 느끼는 시간이 달랐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늦은 오후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이제 막 하루가 시작하는 시간일 수 있다. 하지만 하루를 등분하고 전지구적으로 표준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시간의 흐름이 모두에게 동일한 것 같은 착각이 발생하게 된다. 이 작은 지구 위에서는 그렇게 해도 살아가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
인류가 발전하면서 우리의 시각은 지구를 탈출해 우주로 확장되었다. 더이상 우리의 '현재'는 우주 전체에 적용되지 않았다. 속도에 따라, 중력에 따라 각자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깨우쳤고, 현재라는 것은 우리와 가까이에 있는 허상과 같은 거품일 뿐이었다.
아인슈타인 시대의 말미에, 고전역학을 뒤흔든 양자역학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변수의 입자성, 미결정성, 관계적 양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는 시간 또한 피해갈 수 없었다.
시간은 양자성을 가진다, 즉 최소 시간 단위가 존재한다. 이를 플랑크 시간 (10^-44초)이라고 한다. 이보다 짧은 시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아래에는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전자나 광자의 위치와 속도가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 또한 고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가 세계를 보는 거시적 관점에서는 시간이 일정하게 흐르는 양 보이지만 양자적 관점으로는 과거와 미래가 중첩되어 나타날 수 있다.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의 전후 모두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시간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선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가능성들이 얽혀 있는 확률적인 구름과 같은 모습을 띤다.
마지막으로 시간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무언가가 아니다. 사물의 변화와 사물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만 정의될 수 있다. 즉, 시간은 그저 사건을 뜻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마차란 무엇인가? 바퀴인가, 차축인가? 이것들의 전체 관계망을 마차라고 할 뿐, 관계를 넘어서는 실체로서의 마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 또한 그러하고 시간 또한 다를 바 없다. 우주에 오직 하나의 입자만 있다면, 시간은 존재할 수 없다. 비교할 대상이 없어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은 상대적인 관계의 척도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다. 시간이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면, 세상을 설명하는데 시간은 필요 없는게 아닐까?
이에 착안해 나온 결과물이 바로 휠러-디윗 방정식이다. 이 식에서는 세상을 설명하는데 시간은 필요없고 상호연결된 사건들의 그물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근본 수준에서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우주에서 시간은 세상에 대한 무지의 표현일 뿐이었다.
시간에 대한 연구는 결국 우리 자신으로 돌아오게 된다. 시간은 본질적으로 기억과 예측으로 만들어진 뇌를 가진 인간이 세상과 상호작용을 하는 형식이며 우리 정체성의 원천이다, 라고 저자는 말한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물리학적 진실은 우리를 허무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의 밀도를 더해준다. 우주라는 거대한 사건의 그물망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흐름'은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시간이라는 이름의 캔버스 위에 매 순간 자신만의 삶을 그려나가는 예술가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진실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