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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발전하면서 인간의 존재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자리가 빼앗기고, 사회적 유용성을 잃을 것을 예상하면서 “그렇다면 나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하는 실존적 불안에 휩싸인다. 그러나 나는 이 질문의 근본적인 기반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장 폴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했다. 존재하는 이유가 존재하는가. 존재하는 것 이상으로 무언가가 논의되어야 하는가? 다시 말해, “인간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얼마전에 신의 존재와 관련하여 짤막한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성경 속 신의 존재에 대한 근거, 오랜 기간의 사유를 통해 신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지인의 이야기, 종교라는 것의 기원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의견들을 나누며 느낀 의문이 있다. 결국 존재론적 사유의 끝은 각자의 믿음에 기반하며 이는 개인의 자아 구성에 근거하고 있음으로, 상호 공통된 답을 낼 수 없고 서로의 믿음에 존중을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해답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존재의 이유 또한 개개인의 마음 속에서는 존재하지만 절대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자칫 잘못하면 극단적 허무주의로 이어질 수 있는 생각이다. 존재할 이유가 없다면 살 이유도 없는 것 아닌가 하면서 말이다. 맞다. 우리는 살 이유가 없다. 하지만 죽어야 할 이유 또한 없다. 모든 것에는 근본적인 이유가 없다. 그저 우리는 각자의 이유를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죽었을 때 부모님이 슬퍼하실 것이 싫다, 내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보고 싶다, 그냥 죽는 것이 무섭다 등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들로 우리는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런 이유들조차 우리는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기작을 통해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2019년 이스라엘 바일란 대학교의 뇌과학 연구진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죽음을 오직 타인에게만 일어나는 일로 분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우리 뇌의 근본적인 착각으로 낙관주의 편향(Optimism Bias)이 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불행한 일을 겪을 확률이 낮다고 믿는 것이다. 뉴스를 보면 수많은 교통사고 관련 사건들이 발생한다. 하지만 뉴스를 보고 있는 어느 누구도 진정한 공포를 느끼며 자신에게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또한 공포 관리 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 TMT)에 따르면 인간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 종교와 예술, 국가와 이데올로기 등 자신이 죽은 뒤에도 영속하는 문화적 세계관을 창조한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의 본질을 ‘죽음을 향한 존재’ (Sein-zum-Tode)로 정의했다. 하지만 인간은 이 무거운 진실을 직면하는 불안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익명의 대중인 ‘세인’(Das Man)속으로 숨어버린다고 한다. 현대 사회의 끝이 없는 콘텐츠, 바쁜 업무, 일상적인 일들은 우리가 죽음이라는 진실을 대면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주의를 분산시킨다.
그러나 AI의 급격한 발전은 다시 인간이 삶의 무의미함을 직시하게 만든다. 언제나처럼 눈을 돌려보지만 코 앞까지 다가온 존재론적 불안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아보인다. 그렇다면 피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미함, 허무주의 그 자체를 직시해보는 것은 어떤가. 니체가 능동적 허무주의를 통해 스스로 자신만의 가치와 의미를 창조해내는 인간(위버멘쉬)이 되어야 한다고 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 스스로 존귀한 생명을 이어가야 할 이유와 의미를 만들어나가면 되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삶의 무의미함을 똑똑히 알면서도 그것에 반항하며 자신의 일상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위대한 일이라고 말이다.
인간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일자리라는 가상의 삶의 이유가 사라진 시대에 인간은 진짜 자신의 삶을 설계해나갈 수 있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생존을 넘어서서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활동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 AI의 발전 양상에 부정적인 의견 또한 다수 있음을 알고 있다. AGI를 넘어 ASI로 발달한 AI가 인간을 가축만도 못하게 만들어버리거나 멸종시킬 수도 있다. 또한 AI의 통제권을 쥐고 있는 극소수가 인류 전체를 통제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수백만년동안 이어져 온 생존이라는 의무를 내려놓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불안 속에서 우리는 우리만의 가치를 만들어나가며 기꺼이 이 삶을 살아내는 진정한 자유를 실천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