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아 전쟁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인 이야기로만 치부되곤 했다. 하지만 하인리히 슐리만에 의해 신화가 역사의 영역으로 발굴되기 시작하였다.
그 이전에도 1870년에 발견된 외교 문서인 히타이트 문서에 따르면, 아히야와(미케네인)라는 세력이 히타이트의 속국인 월루사를 침공했다는 기록이 있다. 월루사는 트로이아의 다른 이름인 일리오스와 발음이 유사하고 위치 또한 트로이아 발굴지와 일치했다.
프랭크 칼버트를 만난 슐리만이 자금을 대며 시작하게 된 히살릭 언덕 발굴을 통해 1873년 성벽과 성문의 흔적을 발견하고 슐리만은 이를 프리아모스의 궁전이라고 확신한다. 특히 순금의 머리 장식을 발견한 그는 트로이아의 헬레네가 썼던 것이라 믿고 아내 소피아에게 씌운 후 사진을 찍어 언론에 공개하면서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학계의 비판이 쏟아졌다. 슐리만은 두 번째 층이 트로이아의 지층이라 생각했지만, 이곳의 연대는 미케네 문명이 존재했던 시기보다 훨씬 앞서 있어 트로이아 전쟁 시기와 맞지 않았다. 또한 슐리만은 아래의 지층이 트로이아가 잠들어 있는 곳이라 확신을 가지고 발굴을 시작하면서 위쪽의 지층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며 내려갔다. 이러한 슐리만의 초기발굴로 인해 지층이 많이 훼손되면서 진실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 이후 긴 시간이 지난 2018년, 트로이아 전쟁의 포로들이 세웠다고 알려진 테네아라는 도시의 흔적이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발견되면서 다시 한 번 트로이아 전쟁의 실존성과 관련된 논쟁에 불이 붙게 된다.
과연 트로이아 전쟁은 신화에 불과한가? 지금까지 발굴되고 발견된 유물들을 보면 신화로만 남을 단순한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 배경에는 도시의 흔적, 외교 문서, 각종 유물과 지정학적 갈등이라는 역사적 뼈대가 존재한다. 모든 내용이 진실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가 요동칠만한 거대한 대전쟁이 단순히 치정 문제로 일어나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학자들이 말하는 무역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을 하고 있다. 당시는 청동기 시대로, 청동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구리와 주석은 중요한 전략 자원이었다. 특히 주석은 유럽 특정 지역에서만 주로 나던 희귀 자원으로 이 주석을 청동기 문명의 중심지인 메소포타미아로 팔기 위해서는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과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곳은 물살이 거세 이용하기가 어려웠고 육로를 대부분 사용하게 된다. 트로이는 바로 이 길목에 위치해있었고 통행세와 관세로 부유해진다. 미케네 문명의 입장에서 이들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트로이아 전쟁은 이 속에서 경제적 이점을 얻기 위한 패권 전쟁의 양상이었지 않을까?
또한 수백년에 걸쳐 벌어진 여러 사건들의 종합일 수 있다. 오래된 이야기들이 으레 그렇듯, 단순히 하나의 사건을 부풀리고 살을 덧붙이는 경우도 있겠지만 비슷하거나 맥락을 같이하는 여러 사건들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기도 한다.
신화는 그 이름이 주는 뉘앙스에 의해 완전한 허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강의에서 배울 수 있었듯 그 속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역사와 진실이 살아숨쉬고 있는 역사의 요람이 바로 그것이었다. 앞으로 우리는 신화를 바라볼 때 인간의 욕망이 충돌하는, 문명과 문명이 만나고 파괴되는 역동적인 역사의 기록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트로이아 전쟁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인 이야기로만 치부되곤 했다. 하지만 하인리히 슐리만에 의해 신화가 역사의 영역으로 발굴되기 시작하였다.
그 이전에도 1870년에 발견된 외교 문서인 히타이트 문서에 따르면, 아히야와(미케네인)라는 세력이 히타이트의 속국인 월루사를 침공했다는 기록이 있다. 월루사는 트로이아의 다른 이름인 일리오스와 발음이 유사하고 위치 또한 트로이아 발굴지와 일치했다.
프랭크 칼버트를 만난 슐리만이 자금을 대며 시작하게 된 히살릭 언덕 발굴을 통해 1873년 성벽과 성문의 흔적을 발견하고 슐리만은 이를 프리아모스의 궁전이라고 확신한다. 특히 순금의 머리 장식을 발견한 그는 트로이아의 헬레네가 썼던 것이라 믿고 아내 소피아에게 씌운 후 사진을 찍어 언론에 공개하면서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학계의 비판이 쏟아졌다. 슐리만은 두 번째 층이 트로이아의 지층이라 생각했지만, 이곳의 연대는 미케네 문명이 존재했던 시기보다 훨씬 앞서 있어 트로이아 전쟁 시기와 맞지 않았다. 또한 슐리만은 아래의 지층이 트로이아가 잠들어 있는 곳이라 확신을 가지고 발굴을 시작하면서 위쪽의 지층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며 내려갔다. 이러한 슐리만의 초기발굴로 인해 지층이 많이 훼손되면서 진실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 이후 긴 시간이 지난 2018년, 트로이아 전쟁의 포로들이 세웠다고 알려진 테네아라는 도시의 흔적이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발견되면서 다시 한 번 트로이아 전쟁의 실존성과 관련된 논쟁에 불이 붙게 된다.
과연 트로이아 전쟁은 신화에 불과한가? 지금까지 발굴되고 발견된 유물들을 보면 신화로만 남을 단순한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 배경에는 도시의 흔적, 외교 문서, 각종 유물과 지정학적 갈등이라는 역사적 뼈대가 존재한다. 모든 내용이 진실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가 요동칠만한 거대한 대전쟁이 단순히 치정 문제로 일어나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학자들이 말하는 무역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을 하고 있다. 당시는 청동기 시대로, 청동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구리와 주석은 중요한 전략 자원이었다. 특히 주석은 유럽 특정 지역에서만 주로 나던 희귀 자원으로 이 주석을 청동기 문명의 중심지인 메소포타미아로 팔기 위해서는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과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곳은 물살이 거세 이용하기가 어려웠고 육로를 대부분 사용하게 된다. 트로이는 바로 이 길목에 위치해있었고 통행세와 관세로 부유해진다. 미케네 문명의 입장에서 이들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트로이아 전쟁은 이 속에서 경제적 이점을 얻기 위한 패권 전쟁의 양상이었지 않을까?
또한 수백년에 걸쳐 벌어진 여러 사건들의 종합일 수 있다. 오래된 이야기들이 으레 그렇듯, 단순히 하나의 사건을 부풀리고 살을 덧붙이는 경우도 있겠지만 비슷하거나 맥락을 같이하는 여러 사건들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기도 한다.
신화는 그 이름이 주는 뉘앙스에 의해 완전한 허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강의에서 배울 수 있었듯 그 속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역사와 진실이 살아숨쉬고 있는 역사의 요람이 바로 그것이었다. 앞으로 우리는 신화를 바라볼 때 인간의 욕망이 충돌하는, 문명과 문명이 만나고 파괴되는 역동적인 역사의 기록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