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철학을 공부하는 걸까. 아니, 철학이라는 학문이 어떻게 학문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군대인데도 불구하고 인복이 따라주었는지 내 주변에는 인문학을 중시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알게 모르게 그에 영향을 받아 평소 같으면 손도 대지 않았을 세계문학전집에서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결국 얼마 읽지도 못하고 책을 반납하게 되었는데, 철학을 주제로 하는 책들을 읽다 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 자신의 생각을 근거로 하는 자신의 생각을 근거로 하는 자신의 생각을 근거로 하는...... 구조의 꼬리물기. 해당 철학자의 수많은 생각들 중 하나라도 내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해당 학자의 전체적인 논리 구조가 전혀 와닿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이런 책들은 시작하기가 힘들고, 읽는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불쾌함과 의문만 느끼며 끝난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런저런 사유를 하며 현실적인 문제(ex. 주변관계, 자본관리, 건강관리 등)에서 벗어난다. 어떻게 보면 현실 도피라고 생각했다. 뇌와 자아가 비대하게 발달한 생명체에게 발생하는,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정신병. 고지능의 역설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정신 또는 의식을 물질적인 육체와 분리하여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현실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그로부터 파생된 여러 낭만적이거나 난해한 것들을 주제로 하는 콘텐츠들을 즐겨 소비하고 있고, 이 또한 현실을 구성하는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현실 너머의 것들이 실존한다고 하면 글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솔직히 말해 나는 뇌와 관련된 연구가 진일보한다면 정신이니 영혼이니 하는 것도 결국에는 육체의 일부로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 또한 가정일 뿐이고 어떻게 보면 물질이라는 종교를 믿는 것과 다를 바 없긴 하다. 아마도 앞서 말했던 불쾌함은 철학이라는 학문이 가지는 기본적인 특성이 나의 기저에 깔려있는 관념들과 강하게 상충하는 것으로부터 유래한 듯하다.
그런 와중 친구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철학은 인간성, 그리고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학문이다.' 그리고 '철학에서 합리성과 완벽한 해답을 찾으려 하면 안된다. 인간성이란 모호함에서 오기 때문이다.' 나에게 학문이란 진리를 찾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었다.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학문은 도태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대신하여 답을 명쾌하게 제공하는 학문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것이 나에게 학문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더라도 학문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이야기는(니체의 말을 변용한 것이지만 그의 덕분에 알게 되었으므로) 27년동안 해온 사고의 패러다임을 조금 바꿔버릴 만큼의 영향력이 있었다. 정답이 없다는 것, 삶 또한 정답이 없고, 철학 또한 정답이 없다. 아직 제대로 곱씹어 볼 시간은 없었지만, 둘은 어딘가 비슷해 보였다.
최근에 자신의 합리성을 무기로 주변을 통제하려 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든 적이 많았다. 얼핏 보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보이는 이야기이기에 그 말에 따르지 않으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환경이 강제로 조성된다. 몇 번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문득 그들이 나에게 합리성을 앞세워 행동을 강제하는 그 과정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서로 대화를 통해 잘 해결한 경험이 있다. 그 과정에서 인간성과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인간이기에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어디까지 합리적일 수 있을까. 결국 완벽한 사람은 없다. 모순된 모습에서 그 사람의 매력이 나오고 또한 인간이 된다.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해도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 더 나은 사회로 만드는 방법이지 않을까.
왜 철학을 공부하는 걸까. 아니, 철학이라는 학문이 어떻게 학문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군대인데도 불구하고 인복이 따라주었는지 내 주변에는 인문학을 중시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알게 모르게 그에 영향을 받아 평소 같으면 손도 대지 않았을 세계문학전집에서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결국 얼마 읽지도 못하고 책을 반납하게 되었는데, 철학을 주제로 하는 책들을 읽다 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 자신의 생각을 근거로 하는 자신의 생각을 근거로 하는 자신의 생각을 근거로 하는...... 구조의 꼬리물기. 해당 철학자의 수많은 생각들 중 하나라도 내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해당 학자의 전체적인 논리 구조가 전혀 와닿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이런 책들은 시작하기가 힘들고, 읽는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불쾌함과 의문만 느끼며 끝난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런저런 사유를 하며 현실적인 문제(ex. 주변관계, 자본관리, 건강관리 등)에서 벗어난다. 어떻게 보면 현실 도피라고 생각했다. 뇌와 자아가 비대하게 발달한 생명체에게 발생하는,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정신병. 고지능의 역설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정신 또는 의식을 물질적인 육체와 분리하여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현실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그로부터 파생된 여러 낭만적이거나 난해한 것들을 주제로 하는 콘텐츠들을 즐겨 소비하고 있고, 이 또한 현실을 구성하는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현실 너머의 것들이 실존한다고 하면 글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솔직히 말해 나는 뇌와 관련된 연구가 진일보한다면 정신이니 영혼이니 하는 것도 결국에는 육체의 일부로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 또한 가정일 뿐이고 어떻게 보면 물질이라는 종교를 믿는 것과 다를 바 없긴 하다. 아마도 앞서 말했던 불쾌함은 철학이라는 학문이 가지는 기본적인 특성이 나의 기저에 깔려있는 관념들과 강하게 상충하는 것으로부터 유래한 듯하다.
그런 와중 친구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철학은 인간성, 그리고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학문이다.' 그리고 '철학에서 합리성과 완벽한 해답을 찾으려 하면 안된다. 인간성이란 모호함에서 오기 때문이다.' 나에게 학문이란 진리를 찾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었다.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학문은 도태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대신하여 답을 명쾌하게 제공하는 학문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것이 나에게 학문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더라도 학문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이야기는(니체의 말을 변용한 것이지만 그의 덕분에 알게 되었으므로) 27년동안 해온 사고의 패러다임을 조금 바꿔버릴 만큼의 영향력이 있었다. 정답이 없다는 것, 삶 또한 정답이 없고, 철학 또한 정답이 없다. 아직 제대로 곱씹어 볼 시간은 없었지만, 둘은 어딘가 비슷해 보였다.
최근에 자신의 합리성을 무기로 주변을 통제하려 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든 적이 많았다. 얼핏 보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보이는 이야기이기에 그 말에 따르지 않으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환경이 강제로 조성된다. 몇 번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문득 그들이 나에게 합리성을 앞세워 행동을 강제하는 그 과정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서로 대화를 통해 잘 해결한 경험이 있다. 그 과정에서 인간성과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인간이기에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어디까지 합리적일 수 있을까. 결국 완벽한 사람은 없다. 모순된 모습에서 그 사람의 매력이 나오고 또한 인간이 된다.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해도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 더 나은 사회로 만드는 방법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