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OPENAI사의 GPT-6 ASTRA에 열광하고, AGI의 시대가 도래했다며 환호하고 있다. 혼자서 컴퓨터를 조작하고, 3D 모델링을 하며, 전기 배선 작업도 한다. 한 번의 프롬프트로 퀄리티 좋은 게임을 만들어주며, 또한 개인 비서로서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나도 AI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아직 ASTRA는 써보지 못했지만 클로드의 Fable과 Opus 모델을 바탕으로 클로드 코드 및 코워크 기능을 활용해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내 머릿속에서 꺼내어 구현해보려 하였다. 개인 블로그를 포함한 여러 사이트들을 만들어 보고, 게임도 만들어 보고, 내 삶의 맥락을 기억하는 AI 비서를 만들어 보려고도 했다(개발이 아니라 만든다는 표현을 하는 이유는, 나는 아이디어만 가지고 나의 의도에 따라 AI에게 명령만 할 뿐 서비스 제작 과정에 깊게 관여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과물의 코드를 봐도 전체적으로 이해가 어렵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부를 할 때도 AI를 활용해서 학습하면 효과적일까 싶어 저번 학기 군E러닝을 공부할 때 AI를 항상 곁에 두고 활용하며 학습하는 시도를 해보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AI의 가능성과 확장성에 대해 의문만 늘어나고 기어이 AI에 질려버리기에 이르렀다.
AI 에게 지쳐버렸을 당시, 침대에 가만히 누워 생각해보았다. 왜 다들 환호하는 AI에 대해 나는 유독 회의감이 들었을까. 내가 활용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내가 제일 혐오하던 AI 활용법 강의 유튜브 등을 내 손으로 직접 찾아보기도 하고, AI 관련 수많은 뉴스나 다큐멘터리도 찾아보았다. 하지만 답은 나의 AI 활용 경험 속에 있었다. 현실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고,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아이디어를 AI와 함께 현실화할 때 좋은 AI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잠재적인 결론이다.
최근 '혜화로 24가자'(블로그 play 메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라는 웹앱 서비스가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 서울대 의예과를 수료하기 위한 조건이 꽤나 복잡한데, 그 조건이라는 것도 학번마다 상이하다. 이번에 군대를 전역하고 예과 1학년으로 복학하는 24학번 동기들이 간편하게 자신의 수료 진행 여부를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AI와 함께라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시작했고 현재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 그 과정은 정말 흥미로웠다. 학교 및 학과 관련 여러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면서 유용한 공지사항이나 첨부파일들(교과목 전체 일람표 같은)을 모으고, 디자인 레퍼런스 및 구현하고자 하는 기능들을 정리하고 기획하여 AI를 통해 웹앱 서비스를 구축하는 과정은, 토큰이 녹아 사라지는 것도 모른 채 단 이틀 만에 주간 한도를 모두 소진할 정도로 즐거웠다.
하지만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하나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에 시도했던 AI 비서 만들기와, 공부를 할 때 머리 좀 그만 쓰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에 학습하는 과정을 모두 AI로 대체했을 당시의 경험은 공통적으로 AI의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유클리드의 연전연승이다. 결국 학습을 하는 것,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AI 시대의 주된 능력이라고 언급하는 비판적인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AI를 남발하기보다 힘들고 지루한 인지적 마찰을 직면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AI는 마치 우리가 모든 것을 이해한 것 같은 만족감을 안겨주는, 일명 '능력의 착각'을 일으키기에 매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학습할 내용을 내면의 맥락에 맞게 체화하는 이해의 과정은 AI에게 외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AI와 나는 서로 고유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나의 모든 감각과 생각을 AI와 공유하지 않는 한, 그는 내가 될 수 없고 내가 원하는 수준의 주체성을 가질 수 없다.
결정적으로, AI 에이전트 관련 다큐멘터리인 KBS의 "나의 완벽한 비서-AI 에이전트 시대(창 540회, KBS 26.3.17.)"에서 본 한 AI 연구자의 모습은 어딘가 모순적이었다. 가족과의 단란한 점심 식사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식단 사진을 촬영한 후 직접 제작한 에이전트에 전송해 식단 분석을 시켜놓고, 노트북 2대를 앞에 두고 작업을 하는 모습. 그 뒤에서 아내는 아이들과 현실 속 생활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모습. 와중에 아이가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보지만, 정작 아빠는 노트북만 바라보고 있는, 서로 가까이 있음에도 무언가에 막혀있는 듯한 이질적인 모습을 보고 무엇을 하든 간에 현실을 위하고 현실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아주 좁고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자신과 세상을 대하게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느꼈다.
그렇게 근 몇 달 간 빠져있던 AI 만능론에서 나는 헤어 나올 수 있었다. 먼 미래에는 ASI로의 발전이 현실화되어 결국 AI가 지능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감정과 의식을 가지게 된다면, 그때는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AI는 절대 내가 될 수 없다. '나'라는 사람 그 자체를 온전히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AI는 도구로서, 먼 미래에 개발될 ASI는 감정과 의식을 가진 타인으로서 역할을 하게 될 뿐, 나라는 사람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지금의 비서를 생각해보면 된다. 비서는 내가 아니다. 그 또한 유일한 주체로서의 한 사람이고, 나를 곁에서 돕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이전의 내가 했던 몇몇 시도들은, 불가능한 것을 기대하고 행하려 했던 나의 통찰력 부족으로부터 기인한 잘못된 접근법일 뿐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AI 활용하기를 멈추지 않을 나를 위해서 대원칙을 하나 세워놓으려 한다.
"나를 대체하기 위한 AI가 아니라, 나의 현실을 가꾸어 주는 AI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