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과로 가고싶니?
제가 의대생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거의 항상 따라오는 질문입니다. 보통은 '성적 따라서 갈 것 같다'라거나 '딱히 명확한 꿈이나 뜻이 있어서 의대를 온 게 아니라 아직은 잘 모르겠다'라고 답합니다. 너무 솔직한 것 아닌가 하지만 거짓말은 못하겠습니다. 제 성격이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어서 라기보다는 나중에 '너 그때 그렇게 한다고 말했잖아?'라고 누군가 따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 자체로 상당히 피곤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언제나 같을 수는 없을지라도 너무 자주 변한다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진심이 담기기 힘들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명확한 뜻 없이 의대에 왔다는 말이 제가 누군가에 의해 의대에 진학하는 것을 강제 받았거나 의학에 진심이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보면 제 인생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진리는 바로 '최고가 되고자 하는 향상심'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누구보다 자신의 삶에 진심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나 최고라는 것은 상당히 애매한 단어입니다. 작은 무리 안에서 최고를 의미할 수도 있고, 학교에서의 최고를 의미할 수도, 보다 넓은 단위에서의 최고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로는 최고를 원한다고 하지만 자신과의 타협을 반복하며 그 범위를 점점 좁힌 적도 많았습니다. 또한 최고는 제가 생각하기에 최선에서 한 단계 타협한 결과라고 여겨집니다. 최선은 끝이 없습니다. 7시간을 공부했으면 8시간 공부하는 것이 더욱 최선일 수 있고, 8시간을 공부했으면 16시간을 공부하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습니다. '조금만 더 할 걸', '오히려 그때 잠을 충분히 잤다면'. 어떻게 이런저런 일말의 후회도 남기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최고는 다릅니다. 2등보다만 잘하면 된다는 선이 명확합니다.
결과적으로 서울대 의대에 진학한 이상, 이곳에서 다시 한번 제 인생의 진리를 실현하기 위해 저를 갈아 넣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미래입니다. 가끔 본과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미래의 나에 대한 연민과 불안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미래의 저를 위해서 지금의 제가 해줄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게 되고, 그렇게 지금 군대에서도 공부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고민하고 있던 질문, '내가 최고를 지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얼추 윤곽선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아마 미래의 내가 고를 수 있는 인생의 선택지를 넓혀주기 위함이 아닌가 합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저는 뭔가 하나를 정하는 것에 큰 두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하나를 선택했는데 다른 길이 더 옳은 길이였다면, 저는 더 잘 알아보지 못한 과거의 나를 강하게 질책하면서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확정성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면책권을 부여해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노력이 부족하여 다른 길이 좋은 길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 길을 걸을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온다면 저는 더이상 저를 용서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향상심이 없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불가해한 존재를 보는 듯합니다. 제 이해를 벗어난, 그 행동 원리를 이해할 수 없는 외계 종족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공부를 하기 싫어 어떻게든 주제를 찾아 글이나 쓰고 있는 저 자신이 참 모순적입니다. 어쩌면 세상 사람들이 참으로 다채로운 삶을 그려나가는 것은 이런 모순적인 모습 또한 삶에서 중요하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저의 눈에 불가해한 존재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어쩌면 저를 보고 불가해한 외계 종족으로 볼지 모릅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고. 삶을 살아내는 방식에는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끝끝내 결론이 날 것 같습니다.
최근 우연히 뜬 본과 시험 브이로그를 본 이후로 제 유튜브 알고리즘은 비슷한 영상들로 점령당해버렸습니다. 그렇게 본과생들의 유튜브 브이로그들을 자주 챙겨보게 되었는데, 열심히 공부하고 당연한 결과로서 좋은 성적을 받고 기뻐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줄 알았던 영상들은 제 생각과 많이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저러다 급사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체력과 시간을 갈아 넣고도, 좋은 성적도 아닌 겨우 시험 하나가 끝났다는 것에 잠깐 기뻐할 틈도 없이 다음 시험 준비가 시작됩니다. 영상을 보는 내내 숨이 막혀 왔습니다. 과연 저도 그렇게 살아낼 수 있을까요. 나이가 좀 있다는 게 마음 한 켠에 걸리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그들이 브이로그의 마무리로 빛나는 성적표가 아니라 단지 시험이 끝났다는 것 하나에 조용히 기뻐하는 모습에서, 그저 자신의 삶을 버텨내고 있고 버텨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이 대단하게 보입니다. 저 또한 버텨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미래의 나에게 버텨낼 힘과 지혜를 물려주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글 쓰는 것을 멈추고 운동을 다녀왔다가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어느 과로 가고싶니?
제가 의대생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거의 항상 따라오는 질문입니다. 보통은 '성적 따라서 갈 것 같다'라거나 '딱히 명확한 꿈이나 뜻이 있어서 의대를 온 게 아니라 아직은 잘 모르겠다'라고 답합니다. 너무 솔직한 것 아닌가 하지만 거짓말은 못하겠습니다. 제 성격이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어서 라기보다는 나중에 '너 그때 그렇게 한다고 말했잖아?'라고 누군가 따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 자체로 상당히 피곤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언제나 같을 수는 없을지라도 너무 자주 변한다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진심이 담기기 힘들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명확한 뜻 없이 의대에 왔다는 말이 제가 누군가에 의해 의대에 진학하는 것을 강제 받았거나 의학에 진심이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보면 제 인생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진리는 바로 '최고가 되고자 하는 향상심'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누구보다 자신의 삶에 진심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나 최고라는 것은 상당히 애매한 단어입니다. 작은 무리 안에서 최고를 의미할 수도 있고, 학교에서의 최고를 의미할 수도, 보다 넓은 단위에서의 최고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로는 최고를 원한다고 하지만 자신과의 타협을 반복하며 그 범위를 점점 좁힌 적도 많았습니다. 또한 최고는 제가 생각하기에 최선에서 한 단계 타협한 결과라고 여겨집니다. 최선은 끝이 없습니다. 7시간을 공부했으면 8시간 공부하는 것이 더욱 최선일 수 있고, 8시간을 공부했으면 16시간을 공부하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습니다. '조금만 더 할 걸', '오히려 그때 잠을 충분히 잤다면'. 어떻게 이런저런 일말의 후회도 남기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최고는 다릅니다. 2등보다만 잘하면 된다는 선이 명확합니다.
결과적으로 서울대 의대에 진학한 이상, 이곳에서 다시 한번 제 인생의 진리를 실현하기 위해 저를 갈아 넣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미래입니다. 가끔 본과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미래의 나에 대한 연민과 불안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미래의 저를 위해서 지금의 제가 해줄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게 되고, 그렇게 지금 군대에서도 공부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고민하고 있던 질문, '내가 최고를 지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얼추 윤곽선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아마 미래의 내가 고를 수 있는 인생의 선택지를 넓혀주기 위함이 아닌가 합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저는 뭔가 하나를 정하는 것에 큰 두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하나를 선택했는데 다른 길이 더 옳은 길이였다면, 저는 더 잘 알아보지 못한 과거의 나를 강하게 질책하면서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확정성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면책권을 부여해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노력이 부족하여 다른 길이 좋은 길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 길을 걸을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온다면 저는 더이상 저를 용서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향상심이 없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불가해한 존재를 보는 듯합니다. 제 이해를 벗어난, 그 행동 원리를 이해할 수 없는 외계 종족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공부를 하기 싫어 어떻게든 주제를 찾아 글이나 쓰고 있는 저 자신이 참 모순적입니다. 어쩌면 세상 사람들이 참으로 다채로운 삶을 그려나가는 것은 이런 모순적인 모습 또한 삶에서 중요하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저의 눈에 불가해한 존재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어쩌면 저를 보고 불가해한 외계 종족으로 볼지 모릅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고. 삶을 살아내는 방식에는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끝끝내 결론이 날 것 같습니다.
최근 우연히 뜬 본과 시험 브이로그를 본 이후로 제 유튜브 알고리즘은 비슷한 영상들로 점령당해버렸습니다. 그렇게 본과생들의 유튜브 브이로그들을 자주 챙겨보게 되었는데, 열심히 공부하고 당연한 결과로서 좋은 성적을 받고 기뻐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줄 알았던 영상들은 제 생각과 많이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저러다 급사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체력과 시간을 갈아 넣고도, 좋은 성적도 아닌 겨우 시험 하나가 끝났다는 것에 잠깐 기뻐할 틈도 없이 다음 시험 준비가 시작됩니다. 영상을 보는 내내 숨이 막혀 왔습니다. 과연 저도 그렇게 살아낼 수 있을까요. 나이가 좀 있다는 게 마음 한 켠에 걸리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그들이 브이로그의 마무리로 빛나는 성적표가 아니라 단지 시험이 끝났다는 것 하나에 조용히 기뻐하는 모습에서, 그저 자신의 삶을 버텨내고 있고 버텨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이 대단하게 보입니다. 저 또한 버텨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미래의 나에게 버텨낼 힘과 지혜를 물려주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글 쓰는 것을 멈추고 운동을 다녀왔다가 공부를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