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란 무엇인가? 이제와 돌이켜보니 어릴 적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로 막연하게 느낌으로만 알고 있었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신화라고 부르는 개념은 다른 개념들도 으레 그렇듯 원래부터 지금의 뜻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이 변천과정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호메로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mythos(뮈토스)와 logos(로고스)의 관계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구 사상사의 관점에서는 뮈토스에서 로고스로의 발전, 즉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신화에서 합리적인 사유로의 발전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제시된 글에서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와 같은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을 근거로 들며 뮈토스와 로고스의 이분법적 의미 분별에 의문을 제기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속에서 뮈토스는 오늘날 로고스와의 대립되는 개념으로서의 뮈토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입으로 한 말을 두루 뜻하는 보편적인 소통행위 전반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당시 뮈토스가 이성적인 소통(연설, 토론 등) 또한 포괄하는 개념이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현대와 달리 로고스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 아니라 대체하여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호메로스 시대 이후, 뮈토스의 의미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직접 경험하지 않고 전해들은 이야기인 소문 정도로 개념이 축소되었다. 소문은 그 성격 상 사람을 타고 넘어갈때마다 필연적으로 과장 혹은 왜곡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 중 대대로 전해내려온 소문은 일종의 전설이 되었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뮈토스는 실제 사실과 다른 꾸며낸 것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이는 투키디데스가 뮈토스 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사실과 맞서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뮈토스란 시인이 만들어내는 작품이라고 본 것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후 고대 그리스인이 선조들의 영웅적인 전설을 더욱 찬란하게 만들기 위해 불멸의 존재인 신을 끌어들였고, 뮈토스는 신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장대한 서사인 신화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 단계에 이르러서 뮈토스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임을 의미하는 로고스와는 확연히 다른 대척점에 있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신화로서의 뮈토스는 단지 꾸며낸 이야기들로,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허구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는가? 오히려 신화는 문자가 없던 구술시대에 공동체의 정신적 자산들을 담아 기억에서 기억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승하던 가장 중요한 보물창고였다. 특히 로고스로 분류되는 철학과는 놀라운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뿌리를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단지 신화는 이야기이고 철학은 개념(이론)에 해당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에 따라 신화를 사랑하는 사람(philomythos)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philosophos)와 거의 동일시될 수 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뮈토스의 의미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 이성적인 로고스와의 이분법적 분별이 후대에 일어난 일임을 알 수 있다. 제시된 글에서 파리스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 뮈토스 속에는 당연하게 이성적인 부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뮈토스가 의미에 변천을 겪어 단순한 말에서 신화의 의미를 가지게 될 때까지의 과정 속에서도 우리는 그 핵심이 완전한 상상에 기반한 허구 그 자체가 아닌 진실과 이성에 기반하고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다. 신화의 기반인 뮈토스 자체가 원래는 이성과 논리를 포괄하던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릴 적 이솝 우화와 같은 이야기 속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듯, 신화 또한 이제 보니 그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조지프 캠벨이 말했듯, 신화란 마치 우화처럼 상징적 이미지들과 이야기들을 조합해놓은 것이다. 이솝 우화가 말하는 동물이라는 허구적 설정을 가져와 인간 사회 속 교훈을 전달하듯이, 신화는 신과 영웅이라는 허구적 상상을 통해 인류의 지혜와 세계에 대한 고찰을 전달한다. 뮈토스가 말 그 자체에서 신화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사실성은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여전히 그 근본에는 여전히 진실이 담겨있으며, 신화를 통해 흥미를 추구하는 것을 넘어 과거 고대인들이 전달하려고 했던 지혜의 원형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신화란 무엇인가? 이제와 돌이켜보니 어릴 적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로 막연하게 느낌으로만 알고 있었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신화라고 부르는 개념은 다른 개념들도 으레 그렇듯 원래부터 지금의 뜻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이 변천과정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호메로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mythos(뮈토스)와 logos(로고스)의 관계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구 사상사의 관점에서는 뮈토스에서 로고스로의 발전, 즉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신화에서 합리적인 사유로의 발전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제시된 글에서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와 같은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을 근거로 들며 뮈토스와 로고스의 이분법적 의미 분별에 의문을 제기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속에서 뮈토스는 오늘날 로고스와의 대립되는 개념으로서의 뮈토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입으로 한 말을 두루 뜻하는 보편적인 소통행위 전반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당시 뮈토스가 이성적인 소통(연설, 토론 등) 또한 포괄하는 개념이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현대와 달리 로고스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 아니라 대체하여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호메로스 시대 이후, 뮈토스의 의미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직접 경험하지 않고 전해들은 이야기인 소문 정도로 개념이 축소되었다. 소문은 그 성격 상 사람을 타고 넘어갈때마다 필연적으로 과장 혹은 왜곡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 중 대대로 전해내려온 소문은 일종의 전설이 되었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뮈토스는 실제 사실과 다른 꾸며낸 것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이는 투키디데스가 뮈토스 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사실과 맞서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뮈토스란 시인이 만들어내는 작품이라고 본 것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후 고대 그리스인이 선조들의 영웅적인 전설을 더욱 찬란하게 만들기 위해 불멸의 존재인 신을 끌어들였고, 뮈토스는 신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장대한 서사인 신화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 단계에 이르러서 뮈토스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임을 의미하는 로고스와는 확연히 다른 대척점에 있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신화로서의 뮈토스는 단지 꾸며낸 이야기들로,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허구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는가? 오히려 신화는 문자가 없던 구술시대에 공동체의 정신적 자산들을 담아 기억에서 기억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승하던 가장 중요한 보물창고였다. 특히 로고스로 분류되는 철학과는 놀라운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뿌리를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단지 신화는 이야기이고 철학은 개념(이론)에 해당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에 따라 신화를 사랑하는 사람(philomythos)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philosophos)와 거의 동일시될 수 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뮈토스의 의미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 이성적인 로고스와의 이분법적 분별이 후대에 일어난 일임을 알 수 있다. 제시된 글에서 파리스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 뮈토스 속에는 당연하게 이성적인 부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뮈토스가 의미에 변천을 겪어 단순한 말에서 신화의 의미를 가지게 될 때까지의 과정 속에서도 우리는 그 핵심이 완전한 상상에 기반한 허구 그 자체가 아닌 진실과 이성에 기반하고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다. 신화의 기반인 뮈토스 자체가 원래는 이성과 논리를 포괄하던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릴 적 이솝 우화와 같은 이야기 속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듯, 신화 또한 이제 보니 그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조지프 캠벨이 말했듯, 신화란 마치 우화처럼 상징적 이미지들과 이야기들을 조합해놓은 것이다. 이솝 우화가 말하는 동물이라는 허구적 설정을 가져와 인간 사회 속 교훈을 전달하듯이, 신화는 신과 영웅이라는 허구적 상상을 통해 인류의 지혜와 세계에 대한 고찰을 전달한다. 뮈토스가 말 그 자체에서 신화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사실성은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여전히 그 근본에는 여전히 진실이 담겨있으며, 신화를 통해 흥미를 추구하는 것을 넘어 과거 고대인들이 전달하려고 했던 지혜의 원형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