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강의에서 나는 수많은 신들을 알게 되었고, 신들 사이의 권력 투쟁이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흥미를 키워나갈 수 있었다. 분명 각 신들 모두 나름대로 개성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했지만, 그 중에서도 에로스라는 신은 다른 원초적인 신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돋보이는 차이점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신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단순하게 되돌아보면 에로스가 태초의 4신 중 하나라는 사실부터가 내 마음 속에 들어오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어떤 것이든, 어떤 경우든 최초, 태초, 1등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의미가 남다르게 받아들여지게 되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 같다. 흔히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태초의 4신에는 공간과 혼돈을 의미하는 카오스, 대지를 의미하는 가이아, 심연과 지하를 상징하는 타르타로스와 사랑을 의미하는 에로스가 있다. 뭔가 다른 3신과는 이질적인 한 신이 보이지 않는가? 물질과 공간적인 역할을 하는 3신과 다르게 에로스는 인간의 감정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스인들이 인간의 감정인 사랑을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것으로 보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4대 태초의 신 중 하나로 여겼다는 점에서 에로스라는 신에 흥미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에로스가 의미하는 사랑은 단순히 인간의 감정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우주, 즉 세상을 움직이는 힘 그 자체를 의미하고 있었다. 헤시오도스는 에로스를 정적인 것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역동적인 동력으로 본다. 가이아와 우라노스가 결합하여 다음 세대를 낳아 역사를 이어나갔듯, 에로스가 없었다면 우주의 역사는 시작조차 되지 못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에로스는 다른 신들이 태어나고 그들이 활동할 신화적 무대를 마련한 창조의 동력이었다.
일반적인 사랑이라는 개념을 철학적으로 승화하면서 에로스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에로스의 본질을 결핍을 채우려는 갈망과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방책을 찾는 것으로 해석한다. 인간의 영혼을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주는 진정한 사랑이 우주와 세계를 움직이는 힘과도 맞닿아 있다는 점은 에로스에 대해 알아보면서 제일 인상깊었던 부분 중 하나였다.
결국 에로스가 나에게 가장 인상깊은 신으로 남은 이유는 단순히 인간의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의 움직임,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라는 불가사의한 힘 그 자체이기 때문이 아닐까.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랑을 상징하는 에로스를 우주 탄생의 핵심인 태초 4대신에 포함한 것은 각 존재들이 개별적으로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그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고찰을 표현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상호작용이 없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서로의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존재를 확신할 수 있다는 양자역학적인 관점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이런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각에 경이로움마저 들었다. 어쩌면 과학과 신화는 서로 대립하는 분야가 아니라 세계의 진실로 통하는 서로 다른 길일 뿐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