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세기, 아테네에서는 참주가 하층민중의 지지를 얻어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하였고 평민을 위한 정치를 시작하였다. 참주는 각 동네마다 따로 열리던 디오니소스 축제를 아테네 한복판에서 크게 열었고 수천 수만명의 아테네 시민들이 한 공간에 모여 축제를 즐겼다. 하지만 축제를 통해 평민들을 다루며 독재를 하려던 참주의 뜻과는 반대로 평민들이 축제를 통해 힘을 기르기 시작했다. 특히 최대 1만 8천명을 수용가능한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열린 제우스에 저항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신화 연극을 본 시민들은 이를 단순 신화로 치부하지 않았다. 그들은 현실의 정치적 상황에 대입해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저항정신과 민주의식을 깨치기 시작했다. 당시 평민들을 위한다던 참주의 정치는 본질적으로 독재적인 통치였고, 이에 클레이스테네스를 중심으로 뭉친 아테네 민중들은 결국 참주를 몰아내고 민주정을 세웠다. 프로메테우스는 민주정의 상징이 되었고, 프로메테우스는 기득권 세력에 저항하며 인간을 구하려는 모습으로부터 민중의 투사로서 대표되었다. 모든 사람이 아테네의 주인이라는 주인의식을 가진 민주정의 힘은 대단해서, 큰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페르시아의 침공으로부터 승리했다. 이후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그리스 내에서 민주정은 힘을 쓰지 못했지만 서양의 민주주의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위 역사를 보면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단순한 신화로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당시 정치적 상황을 비추는 정치적인 이정표이자 민주주의의 뿌리와 정신이었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마지막을 보면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 둘 중 누구 하나가 완전히 승리하는 것이 아닌 상호간에 타협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당시 정치적 상황을 비추는 거울이었다면 신화 속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가 타협하는 장면은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우리는 프로메테우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아테네의 참주, 그리고 프로메테우스는 아테네의 민중으로 빗대어 볼 수 있다. 폭정을 일삼던 제우스를 협상의 테이블로 끌고 나올 수 있었던 프로메테우스의 힘은 제우스와 같은 물리적인 것이 아닌 지식과 정보였다. 그는 제우스의 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비밀스러운 지식을 알고 있었고 그에 따라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 사이의 역학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는 아테네 민회에서 폭력적인 힘보다 이성적인 논증을 중시했던 모습과 일치한다. 이성적인 논리로 무장한 아테네 시민들이 참주의 폭정을 몰아내고 폴리스를 움직이는 궁극적인 힘이 될 수 있었던 것으로, 프로메테우스는 아테네의 시민들에게 정치적 조언자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볼 수 있다.
결국 제우스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도 프로메테우스와 타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제우스만의 용서와 자비로 나온 결과가 아니었다. 일종의 정치적 거래로서, 통치자의 권력이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고 폭력만으로는 권력을 유지할 수 없음을 알려주는 사건이었다.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이러한 전개는 현실의 아테네에서도 적용되었다. 절대자의 무력이 아니라 상호 합의에 기반한 역학구조가 더 성숙한 통치 형태라는 사실을 깨우쳤고 이에 아테네는 참주정치의 형태에서 벗어나 민주정의 형태로 거듭나게 된다. 정권이 안정되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반대 세력을 억압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통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의견과 세력을 아우르는 포용적인 정치는 공동체의 내부 분열을 막고, 페르시아의 침공과 같은 외부 세력의 위협에 한 마음으로 단결하여 맞서 싸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도 빗대어 볼 수 있다. 지금은 과거에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많은 갈등이 있고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는 판국이다. 남녀 간, 정치 성향 간, 세대 간 갈등은 일상이고 심지어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갈등도 심해지고 있다. 프로메테우스의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성숙한 민주주의란 결국 설득과 건설적인 비판으로 서로간의 갈등을 넘어 통합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서로를 배제하고 분열해가는 지금의 상호파괴적인 현재에서 벗어나 상호이해의 관계속에서 함께 나아간다면 대한민국은 한층 더 밝은 미래를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기원전 6세기, 아테네에서는 참주가 하층민중의 지지를 얻어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하였고 평민을 위한 정치를 시작하였다. 참주는 각 동네마다 따로 열리던 디오니소스 축제를 아테네 한복판에서 크게 열었고 수천 수만명의 아테네 시민들이 한 공간에 모여 축제를 즐겼다. 하지만 축제를 통해 평민들을 다루며 독재를 하려던 참주의 뜻과는 반대로 평민들이 축제를 통해 힘을 기르기 시작했다. 특히 최대 1만 8천명을 수용가능한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열린 제우스에 저항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신화 연극을 본 시민들은 이를 단순 신화로 치부하지 않았다. 그들은 현실의 정치적 상황에 대입해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저항정신과 민주의식을 깨치기 시작했다. 당시 평민들을 위한다던 참주의 정치는 본질적으로 독재적인 통치였고, 이에 클레이스테네스를 중심으로 뭉친 아테네 민중들은 결국 참주를 몰아내고 민주정을 세웠다. 프로메테우스는 민주정의 상징이 되었고, 프로메테우스는 기득권 세력에 저항하며 인간을 구하려는 모습으로부터 민중의 투사로서 대표되었다. 모든 사람이 아테네의 주인이라는 주인의식을 가진 민주정의 힘은 대단해서, 큰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페르시아의 침공으로부터 승리했다. 이후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그리스 내에서 민주정은 힘을 쓰지 못했지만 서양의 민주주의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위 역사를 보면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단순한 신화로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당시 정치적 상황을 비추는 정치적인 이정표이자 민주주의의 뿌리와 정신이었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마지막을 보면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 둘 중 누구 하나가 완전히 승리하는 것이 아닌 상호간에 타협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당시 정치적 상황을 비추는 거울이었다면 신화 속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가 타협하는 장면은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우리는 프로메테우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아테네의 참주, 그리고 프로메테우스는 아테네의 민중으로 빗대어 볼 수 있다. 폭정을 일삼던 제우스를 협상의 테이블로 끌고 나올 수 있었던 프로메테우스의 힘은 제우스와 같은 물리적인 것이 아닌 지식과 정보였다. 그는 제우스의 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비밀스러운 지식을 알고 있었고 그에 따라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 사이의 역학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는 아테네 민회에서 폭력적인 힘보다 이성적인 논증을 중시했던 모습과 일치한다. 이성적인 논리로 무장한 아테네 시민들이 참주의 폭정을 몰아내고 폴리스를 움직이는 궁극적인 힘이 될 수 있었던 것으로, 프로메테우스는 아테네의 시민들에게 정치적 조언자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볼 수 있다.
결국 제우스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도 프로메테우스와 타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제우스만의 용서와 자비로 나온 결과가 아니었다. 일종의 정치적 거래로서, 통치자의 권력이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고 폭력만으로는 권력을 유지할 수 없음을 알려주는 사건이었다.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이러한 전개는 현실의 아테네에서도 적용되었다. 절대자의 무력이 아니라 상호 합의에 기반한 역학구조가 더 성숙한 통치 형태라는 사실을 깨우쳤고 이에 아테네는 참주정치의 형태에서 벗어나 민주정의 형태로 거듭나게 된다. 정권이 안정되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반대 세력을 억압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통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의견과 세력을 아우르는 포용적인 정치는 공동체의 내부 분열을 막고, 페르시아의 침공과 같은 외부 세력의 위협에 한 마음으로 단결하여 맞서 싸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도 빗대어 볼 수 있다. 지금은 과거에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많은 갈등이 있고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는 판국이다. 남녀 간, 정치 성향 간, 세대 간 갈등은 일상이고 심지어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갈등도 심해지고 있다. 프로메테우스의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성숙한 민주주의란 결국 설득과 건설적인 비판으로 서로간의 갈등을 넘어 통합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서로를 배제하고 분열해가는 지금의 상호파괴적인 현재에서 벗어나 상호이해의 관계속에서 함께 나아간다면 대한민국은 한층 더 밝은 미래를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