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굴복하지 않는 프로메테우스를 벌하기 위해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 대신 그의 창조물인 인간에게로 눈을 돌린다. 원래 인간은 남성만 존재하였는데, 제우스는 이를 파고들어 인간 남자를 괴롭히기 위해 최초의 인간 여성을 만들었다. 헤파이스토스는 여신들을 모델로 흙으로 처녀를 빚었고, 아테나는 예쁜 옷과 화환, 허리띠, 황금 머리띠 장식과 베 짜는 솜씨를 주었다. 아프로디테는 매력을, 헤르메스는 아름다운 목소리와 영악한 마음, 교묘한 말솜씨를 주었다. 이렇게 신이 선물로 모든 것을 주었다는 뜻을 가진 여인 판도라가 탄생하였다.
모든 것을 예견한 프로메테우스는 에피메테우스에게 절대 제우스의 선물을 받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하지만 제우스가 헤르메스를 시켜 보낸 판도라에 매료된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를 집에 받아들이게 되었다.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에게 집에 있는 항아리를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했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한 판도라는 결국 뚜껑을 열게 된다.
뚜껑이 열린 항아리에서는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죽음, 질병, 급사, 미움 등, 카오스와 뉙스의 자손들로도 해석될 수 있는 세상 모든 재앙의 총체였다. 판도라는 급히 항아리의 뚜껑을 닫았지만 결국 항아리에 남은 것은 ‘희망'뿐이었다.
왜 하필 희망인가? 희망만이 남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또는 왜 안 어울리는 희망이 항아리 속에 있었는가? 여러가지 의문점들이 생겨난다. 여기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희망 역시 우리의 관념과는 다르게 또 다른 재앙이라는 해석이다. 인간은 항아리에서 쏟아져 나온 여러가지 재앙들에 의해 고통을 받게 된다. 만약 희망이 없었다면 고통 속에서 빠르게 체념하고 포기해버릴테지만 희망이 존재하기에 인간은 말그대로 끝이 없는 고통 속을 살면서도 계속해서 삶을 이어나간다. 가능성이 희박한 것을 갈망하고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희망은 인간을 탐욕으로 이끄는 가장 교묘하고 잔인한 재앙으로 해석된다.
두 번째 해석은 희망이 긍정적인 것이라는 관점을 유지하였을 때 가능한 해석으로, 사실은 항아리 안에 인간에게 이로운 것들만 있었다는 설이다. 판도라가 뚜껑을 열면서 인간에게 이로운 것들이 올림포스 신들의 세계로 날아가버리고 인간에게는 희망만이 남았다는 해석이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인간에게 희망만은 남아있었기에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존재가 되었고 발전하는 종족이 될 수 있었다.
결국 희망이 둘 중 어느것에 해당하는지는 확실하게 답할 수는 없다. 두 해석 모두 가능한 동시에 어딘가 찝찝한 모순점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쩌면 판도라 이야기의 이런 결말은, 희망이 인류를 끝없는 고통으로 내모는 재앙이 될 지 인류에게 주어진 선물이 될 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는 핵심을 의도한 결말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마음가짐에 따라 불행과 고통 또한 긍정적인 것으로 바꿔 성장의 발판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음을 안다. 진정한 행복은 외부에 있지 않다. 우리 각자가 세상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 충분히 자신과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는 프로메테우스를 벌하기 위해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 대신 그의 창조물인 인간에게로 눈을 돌린다. 원래 인간은 남성만 존재하였는데, 제우스는 이를 파고들어 인간 남자를 괴롭히기 위해 최초의 인간 여성을 만들었다. 헤파이스토스는 여신들을 모델로 흙으로 처녀를 빚었고, 아테나는 예쁜 옷과 화환, 허리띠, 황금 머리띠 장식과 베 짜는 솜씨를 주었다. 아프로디테는 매력을, 헤르메스는 아름다운 목소리와 영악한 마음, 교묘한 말솜씨를 주었다. 이렇게 신이 선물로 모든 것을 주었다는 뜻을 가진 여인 판도라가 탄생하였다.
모든 것을 예견한 프로메테우스는 에피메테우스에게 절대 제우스의 선물을 받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하지만 제우스가 헤르메스를 시켜 보낸 판도라에 매료된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를 집에 받아들이게 되었다.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에게 집에 있는 항아리를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했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한 판도라는 결국 뚜껑을 열게 된다.
뚜껑이 열린 항아리에서는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죽음, 질병, 급사, 미움 등, 카오스와 뉙스의 자손들로도 해석될 수 있는 세상 모든 재앙의 총체였다. 판도라는 급히 항아리의 뚜껑을 닫았지만 결국 항아리에 남은 것은 ‘희망'뿐이었다.
왜 하필 희망인가? 희망만이 남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또는 왜 안 어울리는 희망이 항아리 속에 있었는가? 여러가지 의문점들이 생겨난다. 여기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희망 역시 우리의 관념과는 다르게 또 다른 재앙이라는 해석이다. 인간은 항아리에서 쏟아져 나온 여러가지 재앙들에 의해 고통을 받게 된다. 만약 희망이 없었다면 고통 속에서 빠르게 체념하고 포기해버릴테지만 희망이 존재하기에 인간은 말그대로 끝이 없는 고통 속을 살면서도 계속해서 삶을 이어나간다. 가능성이 희박한 것을 갈망하고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희망은 인간을 탐욕으로 이끄는 가장 교묘하고 잔인한 재앙으로 해석된다.
두 번째 해석은 희망이 긍정적인 것이라는 관점을 유지하였을 때 가능한 해석으로, 사실은 항아리 안에 인간에게 이로운 것들만 있었다는 설이다. 판도라가 뚜껑을 열면서 인간에게 이로운 것들이 올림포스 신들의 세계로 날아가버리고 인간에게는 희망만이 남았다는 해석이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인간에게 희망만은 남아있었기에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존재가 되었고 발전하는 종족이 될 수 있었다.
결국 희망이 둘 중 어느것에 해당하는지는 확실하게 답할 수는 없다. 두 해석 모두 가능한 동시에 어딘가 찝찝한 모순점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쩌면 판도라 이야기의 이런 결말은, 희망이 인류를 끝없는 고통으로 내모는 재앙이 될 지 인류에게 주어진 선물이 될 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는 핵심을 의도한 결말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마음가짐에 따라 불행과 고통 또한 긍정적인 것으로 바꿔 성장의 발판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음을 안다. 진정한 행복은 외부에 있지 않다. 우리 각자가 세상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 충분히 자신과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