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강의를 통해 배운 내용과 추가로 제공된 영상을 토대로 신화가 단순히 허구적인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다른 표현 방식임을 아래의 이유로 알 수 있다.
원래 미노스 신화는 신화로만 여겨졌을 뿐 그 실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20세기 초 영국의 고고학자였던 아서 에반스는 미노스 신화를 토대로 크레타 섬을 조사하였고 결국 크노소스(Knossos)를 발굴해낸다. 이는 신화가 역사를 품고 있다는 가장 알아보기 쉬운 증거이며, 크레타 섬은 신화가 역사로 발굴됨에 따라 신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곳이 되었다.
발굴된 궁전인 크노소스의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처음부터 궁전을 크게 지은 것은 아니었다. 크레타 문명이 발달하고 그 위력을 떨치는 영역이 점점 늘어나면서 궁전의 크기도 점점 늘어났다. 처음부터 계획되어 만들어진 건출물이 아닌만큼 거대해질수록 내부 공간은 복잡해졌다. 미노타우로스의 미궁 전설은 크노소스 궁전의 이러한 구조적인 복잡성에 직접적으로 기반하고 있다. 궁전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크노소스 궁전은 내부에서 길을 잃기 좋았을 것이고 미궁과도 같다는 말은 실제 경험에 의한 표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현재 미로를 의미하는 단어인 라비린토스(Laburinthos)의 어원은 양날도끼와 관련이 있다. 양날도끼는 크레타인들이 신성하게 여겼던 상징으로 크노소스 궁전 이곳저곳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크노소스 궁전을 방문했던 사람들에 의해 양날도끼는 양날도끼 숭배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크노소스 궁전 자체를 지칭하는 말로써 사용되게 된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양날도끼의 중심지로서의 의미는 희미해지고 크노소스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인 복잡한 구조를 가진 미로와 같은 곳이라는 의미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제우스가 에우로페(Europe)를 납치한 신화적 사건이 있었다. 에우로페에게 접근하기 위해 제우스는 자존심을 버리고 황소로 변신하여 에우로페를 태웠다. 제우스는 에우로페를 태운 채로 바다를 건너 크레타로 갔고 딕테의 들판에 도착한 후 제우스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하지만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페르시아인들이 말하길 어떤 헬라스인들이 포이니케(페니키아)의 튀로스에 가서 왕의 딸인 에우로페를 강탈해갔다고 한다. 만약 헤로도토스의 기록이 진실이라면 이 또한 신화가 역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임을 증명하는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신화는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허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정도는 다르지만 대부분 문명의 역사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화는 역사적인 기억을 보존하고 전승하는데 효과적인 수단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신화를 공부한다는 것은 오래된 역사와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강의를 통해 배운 내용과 추가로 제공된 영상을 토대로 신화가 단순히 허구적인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다른 표현 방식임을 아래의 이유로 알 수 있다.
원래 미노스 신화는 신화로만 여겨졌을 뿐 그 실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20세기 초 영국의 고고학자였던 아서 에반스는 미노스 신화를 토대로 크레타 섬을 조사하였고 결국 크노소스(Knossos)를 발굴해낸다. 이는 신화가 역사를 품고 있다는 가장 알아보기 쉬운 증거이며, 크레타 섬은 신화가 역사로 발굴됨에 따라 신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곳이 되었다.
발굴된 궁전인 크노소스의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처음부터 궁전을 크게 지은 것은 아니었다. 크레타 문명이 발달하고 그 위력을 떨치는 영역이 점점 늘어나면서 궁전의 크기도 점점 늘어났다. 처음부터 계획되어 만들어진 건출물이 아닌만큼 거대해질수록 내부 공간은 복잡해졌다. 미노타우로스의 미궁 전설은 크노소스 궁전의 이러한 구조적인 복잡성에 직접적으로 기반하고 있다. 궁전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크노소스 궁전은 내부에서 길을 잃기 좋았을 것이고 미궁과도 같다는 말은 실제 경험에 의한 표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현재 미로를 의미하는 단어인 라비린토스(Laburinthos)의 어원은 양날도끼와 관련이 있다. 양날도끼는 크레타인들이 신성하게 여겼던 상징으로 크노소스 궁전 이곳저곳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크노소스 궁전을 방문했던 사람들에 의해 양날도끼는 양날도끼 숭배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크노소스 궁전 자체를 지칭하는 말로써 사용되게 된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양날도끼의 중심지로서의 의미는 희미해지고 크노소스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인 복잡한 구조를 가진 미로와 같은 곳이라는 의미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제우스가 에우로페(Europe)를 납치한 신화적 사건이 있었다. 에우로페에게 접근하기 위해 제우스는 자존심을 버리고 황소로 변신하여 에우로페를 태웠다. 제우스는 에우로페를 태운 채로 바다를 건너 크레타로 갔고 딕테의 들판에 도착한 후 제우스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하지만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페르시아인들이 말하길 어떤 헬라스인들이 포이니케(페니키아)의 튀로스에 가서 왕의 딸인 에우로페를 강탈해갔다고 한다. 만약 헤로도토스의 기록이 진실이라면 이 또한 신화가 역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임을 증명하는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신화는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허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정도는 다르지만 대부분 문명의 역사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화는 역사적인 기억을 보존하고 전승하는데 효과적인 수단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신화를 공부한다는 것은 오래된 역사와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