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내내 왠지 모를 슬픔에, 마음속으로 내내 흘려버린 눈물이 바다가 되어 이윽고 내 정수리를 넘어서는 듯했다. 허우적 댈 힘조차 없이 점점 깊어지는 하강 속에서 책을 끝까지 완독하자 머리부터 발 아래로 물이 빠져나가고 책의 알 수 없는 흡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공감되는 내용이 많아서였을까. 아니면 이 또한 저자의 의도였을까(사실 책의 후반에서 의도한 부분이라고 고백하고 있긴 하다).
책을 읽는 와중에 몇몇 부분에서 경험의 차이가 느껴졌다.
분명히 문장을 읽었고 모르는 단어가 없는데도 마음으로 공감되지 않는 문장들 말이다. 내가 아직 젊다는 반증으로 받아들일 일일까, 아니면 내 삶의 경험이 아직 일천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일까. 사실 경험의 일천함을 논하기 전에, 내가 과할 정도로 미래만을 갈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문이다. 과거, 유년 때의 추억을 기억해내기가 꽤나 어려울 정도로 미래에 몰두해있다. 그래서일까, 가끔가다 부모님이나 지인이 나와의 즐거웠던 추억을 이야기할 때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사실 기억해내려면 할 수 있었겠지만, 인지적 노력이 매우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어 떠올리기를 그만둔 것일지도). 그럴 때면 중요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이 들곤 하지만, 이미 잃어버린 것을 어쩌겠는가. 언젠가 할 경험이 트리거가 되어 다시 생생히 기억나길 바랄 뿐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결과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새부턴가 내 스스로 성취한 것을 가능한 별것 아닌 존재로 끊임없이 치부해온 듯하다. 이것이 내 성취의 끝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고 혹시나 올 수도 있는, 좋지 않은 결말의 순간에 상처가 덜할 테니까.
내가 원하던 학교, 내가 원하던 학과에 합격했을 때에도 단 몇 초의 짧은 전율 뒤에 바짝 따라붙던, 모종의 불안과 두려움은 아마 그러한 것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어느 순간 과잠을 입고 합격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떤 길을 가도 결국에 나라는 존재는 들어날 수밖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선택조차 결국 나라는 존재를 드러낼 뿐, 내가 나를 무엇으로 여기건 어떻게든 숨길 수 없이 세상에 드러날 수밖에 없는, 나라는 것.
나이 스물 일곱에 사춘기가 왔다. 나의 자아가 확립되고 세상을 대하는 나만의 방향성이 뚜렷해지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여느 사춘기가 온 중2처럼 엄마, 아빠에게 이상하게도 뭔가가 치밀어오른다. 부모님이 나에게 원하는 방향과 내가 원하는 방향이 충돌하는 걸까. 하지만 마냥 중2처럼 내 안을 시원하게 다 풀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늦깎이 사춘기에게는 으레 사춘기라면 주어지는 면책권 따위는 없다.
타인과의 관계는 더욱 어렵다. 함께 수십 년을 살아온 부모님과 나의 관계도 그러할진데, 사회에서, 군대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극복해보려 하고, 지치기도 하고, 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언젠가 내가 정복할 수 있을거라 생각지도 않고 그저 그때그때 해결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인, 그런 것이 바로 인간 관계다.
결혼, 그에 앞서 연애에 관해서도 나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나의 눈에 세상의 수많은 결혼과 연애는 무책임하게, 호기심에서, 그저 남들이 하니까, 원래 해야 하는 거니까, 나이가 됐으니까, 혹은 그밖에 별로 신중하지 못한 이유에서 행해진다. 그런 나와는 무관하게 시간은 흐르고, 각자가 각자의 이유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른다.
형들이 먼저 결혼을 하고, 나는 새로운 식구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 조카들 말이다. 나의 사랑스런 조카들이 마치 주인인 양 뛰어다니고 재잘거리는 광경에 아직은 적응하지 못한 것 같다. 언제나 집안에서 막내로서의 역할을 도맡던 사람은 나였는데, 이제는 웃어주고 놀아주어야 하는 어른이, 나도 모르는 새에 되어버렸다.
어떻게 보면 자기 연민에 빠져있는 사람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나는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이 정말 손에 꼽는다. 아니, 그것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또한 알 수 없다. 내가 과연 불합리함과 우연의 순간들 안에서 진정으로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러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행운을 내 것이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정말 알 수 없다.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알 수 없고, 세상도 알 수 없는 일로 가득하다. 이렇게 상념이 길어질 때면, 혹은 그저 하늘이 맑고 날이 좋을 때면, 자주는 아니지만 산책을 나가곤 한다. 걷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나의 사고는 뜬구름 속에서 현실로 기어 나온다. 그리고 깨닫는다. 멍청하게도 답이 없는 질문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이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굳이 완벽한 정답을 찾아내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내팽개쳐버릴 내가 아니라는 것을 믿고 있으니까.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는 채로 두고, 잠깐 산책을 다녀오려 한다.